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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주에서 오송으로

 

폭우로 인하여 열차가 20분 지연됩니다. 고객님의 양해 바랍니다.

기관사는 마치 천재지변이 자기 잘못인 것처럼 수없이 나의 양해를 구한다. 

서로가 무안한 그 시간. 

 

퍼 자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창문을 바라보니 꾸정꾸정한 강물이 다리 밑을 넘실넘실 

중간에 잡초 한 뭉텅이가, 섬 같은 모양으로 둥둥 떠다닌다. 

세상의 흙탕물에 넘칠대는 내 머릿속의 불순물들은 나침반을 잃었다 

그저 두웅둥 부유하며 어딜가오, 어딜 가야 하오를 중얼댄다. 

주어는 무엇이냐를 되묻는 사이

 

스크린 속 너머 액정에 물이 씻겨내 버린 목숨 여럿이 떠있다. 

산사태 때문에 '나는 자연인이다'에 나온 어르신과 아내분이, 흙에 파묻혔다. 

디지털로 표현된 그분들의 죽음은 명조체 스타일. 

그저 내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숨으로 

이진법의 비극이 내 폐와 가슴 한편에 들어왔다 나감을 깨닫는다. 

 

하지만 그분들의 비극의 유효시간은? 글쎄.. 얼마나 될까. 

나에게나 너에게나 말이야.

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핸드폰과 두 눈을 꺼버리고

세상이 어지럽다는 문장을 곱씹는 것뿐. 

 

그대들은 어딜가오, 나는 어딜 가야 하오...